2000년도에 뉴틸리티를 창업하고 디스트릭트로 넘어오면서, 가장 힘들고, 괴롭고,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가장 성취감이 느껴지는 - 거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 일이 바로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이다.

올해까지 근 8년째 평균 한달에 한두개씩은 제안서를 써왔으니 그동안 쓴 제안서만 모아도 아마 백과사전 정도 되는 분량은 거뜬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나를 울리고 웃긴 제안서에 대해 나름 정의를 내려보자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파고 들어가서, 그 일에 몇년간 매달렸던 클라이언트도 미처 생각지 못한, 소위 죽이는 아이디어를 구체화 시켜서, 졸라 알아보기 쉽게 효과적으로 표현, 포장하고 그것도 모자라 프로토타입까지 평균 한 일주일정도의 단기간동안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거짓말같은 일로 대충 정리할 수 있다.

이런 제안서를 쓰는데 처음에는 100장은 장난이고, 툭하면 200장 심지어 300장짜리 제안서도 심심치 않게 쓰곤 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장수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왠만하면 50장을 안넘기는 경지에 이르는데 8년이 걸렸다.  

물론 목표는 왠만한 제안서에 들어갈 내용을 20 - 30장 내외로 줄이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 그 20 - 30장은 10장이 될 수도 50장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에 의해서 표현의 방법이 달라지는 것일 뿐 내용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가끔씩 1page proposal을 요구하는 바보들이 있는데 장난치냐? 그 정도로 상호 내공이 있으면 뭐하러 제안서를 쓰나, 미팅 몇번하면 되지.

거의 항상 밤을 지새워가면서 썼던 모든 제안서들이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몇개의 제안서를 뽑아보자면, 처음에 뉴틸리티를 창립했을 때 삼성전자 해외확산 프로젝트 (그당시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인 3억정도)제안서가 먼저 기억이 난다. 뭣도 모르던 우리 최이사랑 나랑 대략 반씩 나눠서 꽤나 전전긍긍하면서 썼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덜컥 수주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삼성전자는 우리의 고정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두번째로 기억에 남는 제안서는 네이트 2002 그랜드 개편 제안서이다. 무식하게 양으로 때웠던... 지금 봐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노력과 열정 하나로 수주했었던... 네이트는 거의 10억에 가까운 규모였다. 세번째로 기억에 남는 제안서는 CGV 제안서이다. 2004년도 봄으로 기억되는 CGV 제안서는 하나의 논리로 전략부터 세부 구체화방안까지 모두 귀결되는, 제안서의 기틀을 잡혔던 것으로 기억된다. PT때 반응도 열광적이었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수주한 하나은행 제안서는 제안서 자체의 완성도도 높았지만, 정말 의미 있는 것은 사이트가 제안서에서 제안한 내용대로 거의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제안서는 제안서대로 쓰고 프로젝트는 따로 진행하는 웃기는 일들이 대부분인데, 하나은행은 우리가 제시한 제안서를 토대로 구체화되고 실행되었다.

생각난 김에 덧붙이지면, 가끔씩 제안서를 쓰기 위해서 우리뿐만 아니라 에이전시들이 기울이는 노력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아무 생각 없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계약하기 전까지는 사실 그들은 클라이언트도 아니고, 우리는 우리의 비용과 아이디어 체력 등 모든 것을 짜내서 제안서를 써서 주고, 또 당연한 거지만 수주를 한다 해도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업체의 사정이나 자기 프로젝트의 규모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무조건 제안서를 쓰게 하는 아무 생각 없는 인간들, 회사들 보면 정말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사실 제안서를 요청했으면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가 있어야 한다. 왜 제안서 쓰는 비용은 무료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제안서의 내용은 자기들에게 귀속된다라고 사전에 얘기하는 것들을 보면 이건 뭐 강도나 다름이 없다. 가끔씩 아이디어가 필요해서 제안서를 요청하는 (프로젝트는 줄 생각도 없으면서) 그런 날강도 같은 회사도 몇 번 만나보았다. 이런 우월적인 지위에서 발생하는 불합리가 하루빨리 이땅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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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ocksj 2007/02/09 09:38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관행이란 이름하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우물안 개구리들 많은 것 같아. 그런게 사실 불공정관행인건데 말이지..."몰랐어요, 그냥 관행이어서..."라는 대답들이 큰 기업, 공기업들에서 나오는거 보면 정말 어이없어.

  2. adcan 2007/02/12 11:1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CGV 제안서 하고 하나은행 제안서는, 저도 제안쓸 때 "이걸 어떻게 써서 쌈박하고 쌔끈하게 설득하지?" 하는 원초적인 고민이 들 때마다, 번번히 열어보곤 하는, 프리미엄급 자료인 것 같아요. Proposal Award 같은게 있다면, 아마 winner 하고도 남았을껄요? ㅎㅎㅎ 역시. 멋지시단 말이지-

  3. jun 2007/02/12 12:12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프로젝트 수주가 상이지 뭐~

  4. Chester 2007/02/13 12:43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그야말로 거짓말 같은 일이다에서 심한 동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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